마태란 사람은?



마태복음은?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계보

위 성경사전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되어 있다. 그러서 그런 것일까? 족보를 통해 전통성을 주장하는 것 같다. 난 보통 이 부분은 자세히 읽지 않고 건너뛴다.

예수님의 탄생

요셉과 마리아가 나온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의롭다 : 정의를 위한 의기가 있다”란 뜻이다. 영어로는 “a righteous man” 이라고 적혀있다. 요셉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령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성령” 영어로 “The Holy Spirit” 영이긴 영인데 거룩한 영이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많은 믿지 안는 자들이 걸림이 되는 부분이다. 나도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해시키기 힘든 부분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1장 시작은 혈통으로서의 예수님을 설명했고 마지막에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으로 마무리 된다. 형통으로나 영적으로나 전통성을 설명하려는 것 같다. 음… 나름 마태란 사람은 학식이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태복음 2장

동방박사의 방문

동방박사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별을 따라왔다. 그리고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것인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요셉 가족 : 애굽으로의 도피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애굽으로 피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헤롯이 죽은 후에 또 꿈을 통해  이스라엘 갈릴리로 갔다가 다시 꿈을 통해 나사렛이란 동네로 와서 정착한다.

그러고 보니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조용히 끊고자 할 때도, 애굽으로 피난 가고, 나사렛으로 이동하고,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께 예물을 드리고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말라 지시를 받은 것도 모두 꿈에 나타난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특별하게 다가왔다. 꿈을 통해 하나님이 메시지를 남기고 사람은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요즘 시대에도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는 꿈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뭐랄까 현실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연결시키는 무슨 고리 같다. 그냥 한번 생각한 것이지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니..ㅎㅎ

마태복음 3장

세례 요한의 등장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의 외침은 명쾌했다. “회개하라”이다.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 외친 그의 구호 “회개하라”. 그리고 회개케 하기 위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했다. 세례를 주는 이유는 회개를 위해서? 물속에 들어갔을 땐 장사된 것이고 나올 땐 다시 산 것을 의미하는 세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침례. 거듭남을 행위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같다. 성경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출처: 비전성경사전 중>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로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되어 있다.

세례 요한은 과격한 사람인 것 같다. 표현이 직설적이고 단호하다. “독사의 자식들아”,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음… 무섭다.

"천국이 가까왔다" 이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이 멀리 있었는데 이제는 가까이 다가왔다는 말이다.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이다. 예수님이 오시는 시기에 맞추어서 외친 천국의 가까움. 예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모두 이룬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그렇다면 천국은 예수님이 계신 바로 그곳이 아닐까?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저 우주 너무 신비로운 곳에 있는 것인가?, 죽음 후에나 건너갈 수 있는 영적인 세계에 있는 것인가? 천국은 예수님이 있는 바로 그곳 거기가 아닐까? 바로 내 영혼 안에...

예수님의 세례 받음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할 때 요한은 이렇게 말해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례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를 받은 다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세례를 준 사례가 복음서에 나오질 않는다. 이것이 물로 주는 세례와 성령과 불로 주는 세례의 차이인가?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되어 있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신령한 것이 ‘시각’과 ‘소리’라는 오감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마태가 정말 보고 들은 것인지? 아니면 비유적 표현인지는 모르겠다.